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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미국 흑인의 업적을 기념하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콘스디튜션 가(Constitution St) 방면의 입구>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워싱턴 공공 도서관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영어 회화 수업 (English Conversation Circle)에 참석하여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진행자이자 선생님인 (Cara) 씨가 토요일 오전에 시간이 있냐고 물으셨다. 오전에 시내에 위치한 국립 미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에서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을 맞이해 행사도 보고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 관련 전시를 학생들과 함께 볼 예정이라 시간이 있으면 오라는 초대였다. 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는데 고민이 되는 순간에는 일단 가는 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니 무조건 Yes! 가겠다고 했다. 박물관 보는 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국립 미국사 박물관을 처음 가 보는 기회이고, 이런저런 부연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카라 씨도 있어서 더 기대되었다. 워싱턴D.C.의 몰(The Mall) 지역에 여러 개의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스미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들은 입장료가 무료다.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아 박물관만 차분히 둘러보기에도 일주일이 모자랄 거 같다  







 토요일 오전에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오전에 음식재료사러 부근 식료품점에 가기 때문에 버스를 탈 일이 없었는데 간만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박물관에 도착해 안내데스크에서 미국사 박물관 내부 구조가 나와 있는 종이를 한 장 집었다. 얼핏 봐도 정말 넓다. 아직 겨울이고, 주말답게 박물관 안은 여러 사람으로 북적였다. 안내해 주시는 분이 앉아 있어서 궁금한 건 바로 물어볼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 약속 장소였던 동쪽(East)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카라 씨가 먼저 알아봐 반갑게 인사를 하고 2층 동쪽 끝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재즈 선율을 한동안 즐겼다.  






재즈 공연이 끝이 나고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 되자 노래 반주 소리가 들려 성조기 작품이 있는 깃발 홀(Flag Hall)에 자리를 잡고 무대를 기다렸다. 왼편에서 여자분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고, 오른편에서 남자분이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올랐다. 소울넘치는 목소리와 끝내주는 노래 실력에 두 사람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이때 불렀던 노래의 제목이 기억이 안 나 한참을 궁금해했다가 나중에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 당시 불렸던 노래들을 배우는 시간에 다시 알게 되었다. "We Shall Overcome"은 민권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꼽힌다.   



 


10분 정도 미 남북전쟁에 관련된 연설과 민권운동에 관련된 노래를 부르며 "Civil War Military Drill"행사를 즐겼다. 행사를 마무리할 때 "We shall overcome"을 다 같이 부르게 되었는데. 그냥 서서 부르는 게 아니라 그 당시 불렀던 모습과 같이 옆 사람과 팔을 엇갈려 옆 사람의 손을 마주 잡고 양옆으로 몸을 움직이며 불렀다. 아래 사진속의 모습처럼.



사진 출처 : http://www.neh.gov/divisions/preservation/featured-project/eyewitness-reporting-the-civil-rights-movement




2층 중앙 깃발 홀에서의 행사를 본 뒤 건물 서(West)쪽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식당의 한 부분을 통째로 옮겨놓은 구조물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그린즈버러 간이식당의 학생(Greensboro Lunch Counter Student) 1960년 2월 1일이라 적혀 있다. 설명을 읽어보니 그 당시에는 버스나 식당, 의류가게 심지어 수도꼭지, 자판기에도 흑인과 백인이 분리하는 차별정책이 있었고 "Whites Only(백인 전용)"라는 문구가 심심찮게 보였다고 한다. 아주 심하면 식당의 주방장까지도 백인을 선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the State of North Carolina)에서 1960년에 발생한 비폭력 시위다. 1960년 2월 1일 그린즈버러의 울워스백화점에 흑인들만 다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를 다니는 4명의 대학 신입생이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없는(desegregated counter) 계산대에서 치약과 다른 물건들을 문제없이 계산하고 나왔다. 계산 후 같은 백화점 안에 위치한 간이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커피와 음식을 주문했으나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물건구매는 백인과 흑인 구별없이 할 수 있었지만 간이식당은 백인 전용이었던 거다. 식당 정책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절할 수 있다는 정책이 있었다. 식당의 매니저가 나가달라고 말을 했지만, 신입생이었던 네 명의 흑인 청년은 식당 폐점시간까지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다음 날 각기 다른 학교에서 모인 스무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학생들이 앉아서 버티는 연좌 농성에 동참했다. 백인 손님들은  케찹과 마요네즈를 뿌리는 등 연좌농성 중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하는 흑인 학생들을 괴롭히고, 간이식당 직원은 계속해서 음식주문을 받지 않았다.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위를 담기 위해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셋째 날 6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울워스에 모였다. 울워스 본사는 성명을 통해 "지방 풍습에 의해" 분리정책(segregation policies)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넷째 날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연좌농성에 참가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그린즈버러 주변 남부의 도시들로 확산되었다. 


앉아서 버티는 시위가 계속될수록 그린즈버러의 긴장은 고조되어 갔고, 학생들은 분리정책을 시행하는 상점에 대한 광범위한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불매운동하는 상점들의 판매액은 세배 이상 하락했고, 상점 주인은 인종 분리 정책을 포기하게 되었다. 1960년 7월 25일 울워스의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직원이 런치카운터에서 첫 식사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았다. 이후 울워스 전체 매장에서 인종 차별이 폐지(desegregated)되고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지 않고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반면 테네시(Tennessee)의 잭슨(Jackson)에서는 수많은 시위에도 불구하고 간이식당에서 분리정책을 1965년까지 유지했다.


 미국 민권운동의 첫 번째 연좌(sit-ins)는 아니지만 그린즈버러 연좌는 민권운동 승리의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꼽힌다. 주요 연좌농성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그린즈버러 울워스 상점에서 있었고, 지금은 국제 민권운동 센터 및 박물관(International Civil Rights Center and Museum)이 되었다. 


그들의 용감한 행동이 흑인 민권운동에 큰 획을 그었다는 설명해주시는 말에 감동, 또 감동. 사진 속의 간이식당의 식탁과 의자는 당시의 식당이 문을 닫게 되자 그 당시의 식탁과 의자를 그대로 가져온 거라는 설명을 들으니 더 놀라웠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설명 >




이 간의식당 왼쪽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갤러리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Gallery)

에서 워싱턴 행진과 관련된 "Changing America" 가 전시 중이었다. 이번엔 카라 씨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는데 박물관 동선과 구성이 너무나 잘 되어있다. 이런 걸 볼 때나.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식료품점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고, 박물관도 볼 수 있게끔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물이 잘 되어있는 걸 볼 때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있던 팜플렛의 문구가 와 닿아 들고 나왔다. 


"Freedom is never given, It is won."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짧고도 강렬한 문구가 마음에 남는다. 

이렇게 저의 첫 미국사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 




African American History Month


Black History Month라고도 함.

미국 흑인의 역사와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달.

미국에서는 매년 2월을 흑인 역사의 달로 정해 놓고 한 달 동안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1976년에 시작되었다.

'흑인 역사의 달'을 지정하자는 의견은 역사학자인 카터 우드슨과 그가 운영하는 '흑인들의 삶과 역사에 관한 연구협회' 회원들이 처음으로 고안했다. 1926년 2월 초에 우드슨과 회원들은 '흑인 역사의 주'(Negro History Week)를 지정할 것을 계획했다. 이 행사를 위한 달로 2월을 선택한 이유는 노예해방령을 선포했던 에이브러햄 링컨과 흑인 연설가이자 노예폐지 운동가인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생일이 그 달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 후 50년 동안 미국 도시들은 흑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자체 기념일을 만들었으며, 특히 흑인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흑인들이 이룩한 업적에 대해서 토론하게 함으로써 '흑인 역사의 주'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미국민권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1976년 제럴드 포드는 미국인들에게 행사 참여를 권하며 '흑인 역사의 주'를 '흑인 역사의 달'로 확대 지정했다.

21세기 초반에는 '흑인 역사의 달'에 미국 전역의 공립학교와 대학교, 박물관 등이 다양한 행사를 펼치며 흑인의 업적을 기렸다. 국회도서관과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국립인문재단, 국립예술관, 국립공원청, 스미스소니언 협회, 미국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 같은 기관들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각주:1]





  1. "미국 흑인 역사의 달"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2013. 2. 3자 기사] [본문으로]